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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능력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학력주의에 대한 대안은 정말 너무 순진하다는 말이 절로...), 능력주의라는 굳건한 믿음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유명한 게임 중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것이 있다. 딸을 키우는 게임인데, 딸이 18세가 되면 딸의 능력치에 따라 딸의 직업이 결정되고, 게임 상에서 명확하게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을 구분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배드 엔딩, 노멀 엔딩, 굿 엔딩의 구분이 있다. 즉, 딱히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 자기 삶을 잘 살아가더라도 굿 엔딩이 아닌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 또한 사람들이 능력주의를 얼마나 당연하..

2022.07.03

미신 이야기(샐리 쿨타드 지음)

“믿긴 싫지만 너무 궁금한 미신 이야기”에서는 51가지 미신을 소개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밝고 온건한 미신은 “Light” 장에, 어둡고 부정적인 미신은 “Dark” 장에 분류되어 있다. “믿긴 싫지만 너무 궁금한”이라는 부제나, 책 앞 표지의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미신”, 뒷 표지의 “우리 등 뒤를 또각또각 걸어 다니는” 등의 문구를 보면 괴담집을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소개된 미신의 숫자로 보면 비슷하지만) 페이지 수로 따지면 “Dark”보다 “Light”의 비중이 훨씬 많고 “Light”의 소개말에서부터 “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가 이 모든 과학적 지식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신을 믿는 걸까?”라며 저자부터가 딱히 미신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D..

2021.10.18

평균의 종말

은 ‘교육’분야 도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10월 26일 알라딘 기준), 사실 경영 분야나 통계 분야의 도서, 혹은 새로운 분야인 “개개인학” 도서이기도 하다. 책의 부제는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로 되어 있는데, 사실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경영을 속여왔나’,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속여왔나’,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당신을 속여왔나’ 정도의 부제를 달았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겠다. 책에서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평균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평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사고들과 구조들 – 평균적인 사람들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 평균보다 못하면 부족한 것이고 평균보다 잘 하면 우수한 것이라는 생각, 평균 이상의 성적을 받은 사람들을 고용..

2018.10.31

나는 나

는 반강권주의(아나키즘) 운동가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이다. 그는 1926년 사형을 인도받았는데, 일왕의 살해를 시도하였다는 명목이었다. 박열의 배우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자 후기에서도 지적하듯, 가네코 후미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박열의 여자친구/부인”으로만 해석하거나, 한국인 독립운동가들과 비슷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책 후반부의 가네코가 박열과 연인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자신은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으로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만약 박열이 독립운동가라면 교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고 그 당시의 가네코가 조선의 독립을 반대했던..

2018.09.15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의 저자 곽재식은 소설가이며, 게렉터블로그 운영자이기도 하다. (유명한 등이 이 블로그에서 나온 글이다.) 곽재식에 의하면 “글쓰기에 대해 깨달은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으며, “믿지 않는 것을 멋 부리기 위해 늘어놓지 않았”으며, “항상 쓰는 비법과 묘수를 숨김없이 전부 털어놓”았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말 없이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이기도 하다.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즉 ‘1. 좋은 소재를 어떻게 떠올려야 할까? 2. 어떻게 해야 이야기가 재미있어질까? 3. 아름다운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 글쓰기를 시작만 하고 마무리짓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의 네 가지 주제에 대한 대답이라..

2018.09.05

업루티드

의 작가 나오미 노빅은 로 더 유명한 듯 하다. 나는 는 읽지 않았고 이번이 나오미 노빅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는 것이었는데, 꽤 재미있게 읽었다. 폴란드의 민담과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품 속 등장하는 국가들 ‘폴니아’와 ‘로시아’는 아무리 봐도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보인다. 제목 “업루티드”는 “뿌리채 뽑힌”이라는 뜻인데, “uproot”에는 “오래 살던 곳에서 떠나다”라는 뜻도 있으니 소설 초반에는 평생동안 살아왔던 시골 마을에서 드래곤의 탑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으로 뽑혀나온 주인공에 대한 은유처럼 읽히기도 했다. 한편 주인공이 맞서싸우는 대상이 뿌리를 가진 ‘나무’라는 점, 아마도 소설이 시작되었을 때와 소설이 끝났을 때의 주인공의 세상을 보는 관점은 많이..

2018.09.03

헬조선 인 앤 아웃

책의 제목이 꽤나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자극적인 제목이 책의 주제를 잘 설명해 내고 있다. 책 표지에는 “떠나는 사람, 머무는 사람, 서성이는 사람, 한국 청년 글로벌 이동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즉 이 책은 인류학 에세이로서, 한국의 힘든 현실(헬조선)과 관련되어 사람들이 해외로 이주하고, 해외에서 살아가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과정(인 앤 아웃)을 다루고 있다. 책은 일곱 챕터로 나뉘어져 “헬조선” 바깥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면을 조망한다.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보통 개인적인 일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미 국내에서 사람들을 감싸고 있던 사회적 환경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의 숨이 막히는 경쟁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은 사람들을 도피하듯 해외로 떠나게 ..

2018.09.01

무례함의 비용

이라는 책 제목에 주제가 잘 나타나 있다. 무례함에는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은 개인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회사에 가기 싫어진다거나 하는 비용도 포함하지만, 실제로 무례함은 회사가 돈을 적게 벌게 만든다. 무례함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면서, 근로 의욕을 떨어지게 만들고,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만들며, 회사의 이익을 줄이게 한다. (“무례함을 당하는 쪽에 해당하는 노동자들 가운데 (…) 38%가 성과의 품질을 고의로 저하시켰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무례함 때문에 어떤 비용이 발생하는지, 어떤 손실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책의 중반부에서는 스스로의 무례함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주로 말한다.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무례함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가 정중한 사람인지, 혹시 의식하지 못..

2018.08.09

마음의 진보

는 종교 평론가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이다. 원제는 The Spiral Staircase (나선 계단)인데, 책을 읽어보면 왜 제목이 나선 계단인지 알 수 있지만(한국 번역명보다 더 뜻 깊은 제목이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번역을 해 보면 한국 독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제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마음의 진보라는 번역 제목도 꽤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의도도 잘 살렸고. 개인적으로 이 책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저자의 역경을 극복하는 삶, 두 번째는 작가의 종교에 대한 관점(이 점에 있어 특히 마지막 장이 좋았다.) 저자는 삶에서 수많은 실패를 맛보았다. 처음에 택했던 수녀의 삶, 그 이후 택했던 학문의 길, 그 다음 택했던 교직의 길... 스스로 택한 길이었지만 결국 포기하게..

2018.07.26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대학에서 사회과학 수업들을 들으면서, 아무래도 사회과학대는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인간이 얼마나 구조의 영향에 쉽게 휘둘리는지, 사상가들의 사상이 ‘객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궤적과 연관되어 있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 자기 자신의 상처, 자기 자신의 추구 방향의 발현일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정교한 자기합리화 같은 것은 아닐까?). 특히 심리학과 수업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얼마나 자기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인식하고 자기 마음 편하기 위해서 인지체계를 왜곡시켜대는 존재인지, 인간의 인지능력이 얼마나 한계가 있고 부족한지 볼 수 있었다.그래서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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