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be composed 2018. 7. 1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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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회과학 수업들을 들으면서, 아무래도 사회과학대는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인간이 얼마나 구조의 영향에 쉽게 휘둘리는지, 사상가들의 사상이 ‘객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궤적과 연관되어 있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 자기 자신의 상처, 자기 자신의 추구 방향의 발현일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정교한 자기합리화 같은 것은 아닐까?). 특히 심리학과 수업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얼마나 자기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인식하고 자기 마음 편하기 위해서 인지체계를 왜곡시켜대는 존재인지, 인간의 인지능력이 얼마나 한계가 있고 부족한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이고 인간의 인지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건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래도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 객관적인 자세, 나를 함부로 합리화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물론 그냥 내가 그렇게 바랐단 거지 실천을 잘 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사실 앞 문장을 쓰면서 좀 (많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자기비하가 발생했다. 물론 나는 그 전부터 자기비하에도 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뭐 크게 달라진 건 아닐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스스로에게 엄격하려다 보니 오히려 스스로를 잘 챙기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 때 비로소 생각했던 것 같다. 아,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남들에게 잘 해 줄 수 있겠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인간은 정말 스스로에게 틈만 나면 거짓말을 해 대는 존재이고, 그 하나하나의 거짓말들을 다 잡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알량한 안위를 채우려고 남들을 공격하고 비하하고 타인의 고통을 묵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책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에서는 “자기자비”야말로 스스로를 챙기면서도 객관적인 현실 인식을 유지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자기자비(self-compassion)이란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듯 나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자애로운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조건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인생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자존감을 얻는 과정이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고, 자존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존감은 현재 삶의 상황을 나타내는 일종의 지표이지 그 자체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책에서 말하길 자존감이란, “기본적으로 ‘평가’ 시스템”이다. 각자 어떤 판단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에 의해 자존감의 등락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자비이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세상이 혹은 내가 부과한 기준들을 통과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그렇다면, 이런 자기자비 때문에 결국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과도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우를 저지르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자기자비는 오히려 겸손을 불러온다. 겸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도하게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과도하게 낮게 평가하지도 않고, 명확히 판단하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약점에 부끄러워하며 약점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너무 많은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기자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자질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자기자비를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 스스로의 자의식에 속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런 겸손함을 익히면서도 정신적으로도 더 편안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나로서는 추구할 수밖에. 그리고 이런 능력들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이 나만 있을 거라 믿지는 않는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더욱 너그러워질 때, 모두가 더 행복해지고, 사회도 더 건강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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