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be composed 2018. 9.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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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는 반강권주의(아나키즘) 운동가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이다. 그는 1926년 사형을 인도받았는데, 일왕의 살해를 시도하였다는 명목이었다. 박열의 배우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자 후기에서도 지적하듯, 가네코 후미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박열의 여자친구/부인으로만 해석하거나, 한국인 독립운동가들과 비슷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책 후반부의 가네코가 박열과 연인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자신은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으로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만약 박열이 독립운동가라면 교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고 그 당시의 가네코가 조선의 독립을 반대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의 원제는 <<おこうさせたか>>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는 번역된 제목 <<나는 나>>에 비하면 좀 더 서글픈 느낌을 받았다. “어쩌다가 내가 이 모양이 되었나같은 느낌이었다. 가네코는 나는 더 많은 세상의 부모들이 이 수기를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니, 부모들뿐만 아니라,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교육가, 정치가, 사회사상가 모두가 읽어주었으면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가네코는 스스로의 삶이 저주받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지금까지 남아 있고 사람들은 그를 기억한다.

책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박열을 만나게 되기까지 일어났던 사건들을 서술하고 있다. (박열과의 러브스토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무적자(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자)였기에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학교에 다니는 것도 고난의 연속이었고, 당시 충청도에 살고 있던 친척의 집으로 간 이후에도 학대를 당하며 컸다. (그가 살았던 '부강'은 현재 세종시에 있는 듯 하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었던 공부를 하는 데 있어 가난한 형편과 당시의 (혹은, 그녀 친족들의) 보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해서 꿋꿋이 살아나갔다.

가네코 후미코는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았다. 번역된 책 제목대로, 그는 나는 나였던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기도 했지만,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고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았다.

이 책은 가네코 후미코라는 한 독립적인 개인에 대한 기록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둘러싼 시대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저항하고 맞서며 자신의 삶을 살아나갔다. 한편으로는 모진 삶에서 받아온 상처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강한 의지가 그의 삶을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P.S.) 책 본문 중 삭제된 글자가 있는데, 책 앞 일러두기에서 당시 내무성에 의해 검열되어 삭제되었거나 혹은 그 이전 출판사 측의 검열에 의해 지워진 부분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나의 경우 책을 읽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다 보니 정작 삭제된 글자가 나왔을 때 조금 당황했다. 이 글을 보고 이 책을 읽을 분들은 당황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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