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아리아

be composed 2018. 6. 1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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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이자 SF소설가인 곽재식의 <<토끼의 아리아>>. TV드라마화가 되어 작가에게 처음으로 소설로 돈을 벌게 한, ‘데뷔작’인 <토끼의 아리아>를 비롯,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웹진 거울 등 다른 곳에 발표되었던 작품들도 많다. <박승휴 망해라>, <조용하게 퇴장하기> 같은 작품은 거울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상상력에 기반하여, 특정한 아이디어를 펼쳐보이는 성향의 글들인데, 딱 잘라 말하긴 어렵고 그러면 안되겠지만 왠지 저자가 과학자로서 일하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였거나 보고들은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 같은, 과학계의 씁쓸한 진실-로 추정되는 것들-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 나는 뭐 아직까지 사회에선 새내기라고 생각하고 쌓아온 경력이 일천하다보니 실제로 그러한데, 그냥 뭐랄까 어디나 돌아가는 건 참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고, 이건 세상의 평균보다도 심한게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되는 경우 - <흡혈귀의 여러 측면> - 도 있었다. <박흥보 특급>처럼 차라리 아예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비꼬고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 차라리 훨씬 마음이 편하다.
  몇 편만 뽑아 내 짤막한 감상을 말하자면, <박흥보 특급>은 이야기의 진전은 전혀 진지해 보이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 슬픈 이야기. <흡혈귀의 여러 측면>은 마지막 결말이 조금 약하단 생각. 마지막에 충격을 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특정 소재가 있는데, 이 소재는 기술의 발달에 의해 과거에 비해 덜 위험한 것이 되었다. <로봇복지법 위반>은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의 탁상공론,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의도와 진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고 들어야지 자신의 관점에서 ‘이러면 좋아하겠지’ ‘이러면 도움이 될 거야’라고 하였을 때 발생할 문제들, 기득권의 눈으로 “시혜”한다는 것의 모순 같은 것에 대한 우화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비슷한 생각을 <숲 속의 컴퓨터>에서 주인공이 컴퓨터의 비위를 맞추겠답시고 하는 노력을 보면서도 했다.) <조용하게 퇴장하기>는 “잔기”라는,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남아있는 시간을 세어나간다는 개념 자체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풍자를 하며 스토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려다 보니 그런지 상황이 과장되는데, 이 과정에서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그냥 단순한 과장이고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작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잘 했으니.
  장르 소설, 특히 SF 소설에 대한 인식도 대중화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에서, 계속해서 한국 작가의 소설이 찍혀나오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 아닐까 싶다. 특히 곽재식의 경우 특유의 구수한 문체가 있으니, 그가 펼치는 구수한 SF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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