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be composed 2018. 7. 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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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EIDF에서 <미아와 알렉산드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었다. 미아는 부모님과 미국에서 살고 있고 알렉산드라는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과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쌍둥이이다. 중국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노르웨이, 미국으로 각각 입양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쌍둥이임을 알게 된 과정도 흥미로웠는데, 양부모님들은 중국에 오기 전까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고, 아마 원래 중국에 도착해 아이를 데려가는 서로의 일정에서도 만날 일 없을 예정이었지만 한 쪽 아버지가 몸이 아파서 일정이 변경되면서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어? 저 사람들이 안고 있는 아이가 우리 아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했던 것이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둘의 삶은 달랐는데, 알렉산드라는 인구가 겨우 234명 밖에 되지 않는 노르웨이의 시골로 입양되어 형제들과 함께 자라났고, 미아는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외동딸로 자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미있었던 것은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모두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알렉산드라의 경우 마을에 “동양인”이 거의 없어 보였는데도.) 그러다 보니 미국 어머니께서 성격엔 유전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둘을 통해서 미국과 노르웨이를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원래 함께 태어났지만 먼 곳에서 다르고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두 자매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둘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 눈에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범죄율이 높은 미국에 사는 미아는 부모님의 차를 타고 학교에 가지만, 노르웨이에 사는 알렉산드라는 아직 깜깜한 시간에 걸어서 학교에 갔다. 치안이 좋은 편인 한국에 사는 나조차도 이렇게 깜깜한 새벽에 – 물론 노르웨이는 북쪽 지방이라 겨울엔 해가 짧게 떠 있었겠지만 – 보호자 없이 학교를 보낸다는 것에 흠칫했었던 기억이 난다.


  책 <우리는 미래에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는 노르딕 국가들 –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 와 미국의 사회 체제를 비교하면서 노르딕 국가들의 특성과 장점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책 리뷰를 하면서 다큐멘터리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책의 기본적인 컨셉 자체가 아무래도 그 둘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자 아누 파르티넨은 핀란드에서 자란 핀란드인이고, 핀란드에서 기자로 일하며 자란 사람인데 미국 남자를 만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에 정착하자마자 핀란드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미국과 핀란드를 비교한 이 책은 2016년 미국 대선 이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노르딕 국가들은 한국에선 흔히 “북유럽 국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그 곳! 복지가 완벽하고 일과 삶의 균형, 소위 워라밸을 누릴 수 있는 땅!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 높은 교육 수준!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런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는가? 이 책은 기본적으로 노르딕 국가들과 미국을 비교하면서 미국과 노르딕 국가들의 사상이, 사회 체계가 어떻게 다른지, 그래서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다룬다. 아누 파르티넨은 노르딕 국가들이 천국이라고는 말하지 않으며,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은 기본적으로 ‘노르딕 국가들이 미국보다 더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노르딕 국가들의 장점에 압도적인 분량을 할애한다. 노르딕 국가들이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을까? 저자는 그렇다고 본다. 통계상 다른 국가들도 노르딕 국가들과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다양성이 높고, 사람들이 따뜻한 등 많은 장점이 있지만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에 매몰되어 있다. 저자의 생각은 미국 역시 노르딕 국가가 선택한 것과 비슷한 방향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미국의 사회적 안전망이 정말 처참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미국의 광범위한 빈부격차에 대해 들을 때마다 정말 미국이 “선진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라인지 의문을 품었었는데, 실제로 미국인들은 안정적이지 못한 사회 때문에 항상 불안에 시달린다고 한다. 또한 미국인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고 정부의 역할이 적어야 한다고 믿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미국 정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미국인들 중 보수주의자, 혹은 공화당 지지자들을 생각하고 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국에도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그럼 노르딕 국가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잘 할 수 있는가? 저자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에서 그 대답을 찾는다.  나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을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그런데 자유란 무엇일까? 미국인들도 자유를 좋아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노르딕 국가들에서는 개인이 자유롭고자 한다면 남들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의도치 않게 권력관계가 생성된다. 미국의 경우 직장에서 의료보험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직장을 옮기면 의료보험까지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만약 몸에 병이 날 경우 엄청난 병원비를 감수해야 할 위험을 짊어지게 된다. (물론 직장 의료보험도 보장 범위가 천차만별이고 문제를 안고 있어 보험이 있다고 천문학적인 병원비를 마주하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직장에 매이게 된다. 이직이 훨씬 (아마도 한국에서보다도?) 겁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배우자의 직장 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있다면? 나는 배우자에게 매이게 된다.

  반면 노르딕 국가들에서는 어떨까? 저자는 어렸을 때 통학 거리가 몇 킬로미터나 되었고, 심지어 장비를 써서 다녔다고 한다. 자전거, 스키, 도보 등의 방법으로. 어느 날 저자는 발을 내디딜 때마다 허리까지 눈이 파묻히는 상황에서 학교까지 걸어갔다. 네 팔다리를 모두 이용하면 눈에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낸 저자는 기어서 학교에 갔다. 핀란드인 부모님의 관점에서 저자는 시수(강단)이 있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사실 한국인으로서 뜨악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허리까지 눈이 파묻히면 열 살 짜리 아이가 학교에 가기엔 이미 위험한 거 아닌가? 물론 미국인들은 더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노르딕 사람들은 개인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개인이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면 그 관계 또한 자립성, 독립성을 바탕으로 생겨난다고 본다. 개인의 자립은 노르딕 사람들에게 사회가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가 펼쳐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미국에서는 차별적이고 개인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 요소가 많은 사회구조를 방치하면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면 그 불이익은 스스로 감수하게 만들며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선택은 본인이 하되 책임도 본인이 지라는 식이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이다. 노르딕 국가들에서는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내가 아이를 가지든, 공부를 더 하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다. (즉 미국에서는 부모들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느라 허리가 휘고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르딕 국가들의 관점은 정말 민주주의적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은 자유, 평등, 인권 등이고 결국 이런 가치들은 개인이 가지거나 개인 간에 발생하는 것일 텐데, 결국 노르딕 국가들이 추구하는 것은 <평등>과 <개인>의 <인권>에 기반한 <자유>인 것이다.


  한국은 노르딕 국가들에 비하면 미국에 가깝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객관적인 성공의 기준이 있는 것처럼 믿고, 한국 사회는 “뼈를 깎아가며” 열심히 노력하면 “공정하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피눈물을 흘리며 노력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정말 좋은 사회일까?

  하지만 노르딕 국가들 같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다면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 회복이다. 또한 시민들이 서로를 믿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 ‘나도 만약의 경우 이런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겠지’ ‘이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할 거야’ 같은 신뢰가 없으면 노르딕 모델은 어려울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미국사회는 진짜 장난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어떤 미국인들은 이 책에 나오는 노르딕 사회의 면면들을 한국인들보다 더 믿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저자가 다루지 않은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고, 노르딕 국가의 장점들이 완벽하게 실현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언제나,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꿔야 할 사람들이 이런 컨텐츠를 접하기보다는 이미 이런 줄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큰 정부에 대한 기이한 공포감 같은 것을 언급하는데, 뭐 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고, 한편으로는 자기 나라, 자기 집단, 자기 주위사람들 안에서는 존재한다는 것도 알기 어려운 이상하고 기이하고 잘못된 믿음들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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