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라틴어 수업

be composed 2017. 11. 27. 21:30
반응형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을 리뷰하고자 한다.


  우선 불만사항부터. 이북으로 읽었는데 편집이 맘에 들지 않는다. 가령 Lectio XXI에 등장하는 문장 "욕망한다. 그러나 나는 만족한다"는 Desidero sed satisfacio여야 하지만 책에서는 "Desero sed satisfacio"로 표시된다. 라틴어를 잘 모르고 굳이 찾아보고 싶기까지 하지는 않아서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특정 문자의 패턴이 씹혀먹힌 것 같다. (이북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뭔가 명령어로 인식되었다거나... 여튼 뭔가 잘못된 듯 하다) 각주도 분명히 출판년도일 텐데 중간에 ,이 찍혀 있다. 가령 1997년에 출판된 책을 인용했다고 하면 책의 출판연도가 1,997로 나와있는 식. 이북을 읽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북들의 만듦새도 썩 좋지는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 책도 안타깝지만 그 중 하나인 듯 하다. 특히 책 제목이 "라틴어 수업"인 상황에서 라틴어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건 치명적인 실수라 느껴진다. 빠르게 수정되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책 자체가 나빴나? 그렇지는 않다. "라틴어 수업"이 제목이고, 실제로 서강대학교에서 진행되었던 강의들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에 대한 설명들이 등장하곤 하지만, 이 책은 "30일만에 마스터하는 기초 라틴어"류의 실용서적이 아니다. 아마도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라틴어 문법에 대해 많이 배웠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라틴어를 공부하고 싶은 게 목적이라면 이 책은 적합하지는 않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라틴어 수업"을 매개로 해서, 저자의 풍부한 언어학적, 인문학적 지식을 풀어내며 저자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보여주는 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수업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나 일반인들까지 청강하러 왔을 정도였다고 하고, 결국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내용을 공유하고자 책까지 냈다고 한다. 실제로 저자도 "제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도 라틴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고 라틴어를 통해 사고체계의 틀을 만들어주는 데 있었습니다"(Lectio I)라고 밝히고 있다.

  그럼 수업을 통해서 라틴어 말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왜 학생들이 저자와 저자의 수업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짐작이 되기 시작한다. 우선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학생들의 고통에 세상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건 결국 당사자들이라는 저자의 시선이 보인다. 한편으로 라틴어는 고대의 언어이고,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 등 많은 유럽어들에 영향을 준 언어이기 때문에 역사나 언어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어갈 수 있기도 하다. (어떤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고, 내가 관심이 별로 없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지루하기도 했다)이 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생각과 사상을 함께 전달해 주기 때문에,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제공된다.

  한편으로 저자는 굉장히 쉬운 말로 글을 썼다. 라틴어에 대한 설명은 기존에 영어를 아예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난해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단어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실 저자의 메시지, 그러니까 각 챕터의 주제들은 그렇게 특출나거나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자면 무해한 어린이 동화의 교훈들 같은 내용들, 혹은 어디선가 딴 데서도 들어본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서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역량 때문이리라. 저자는 공부가 업인 사람이고, 그렇다면 이론에 파묻혀 현실과는 오히려 동떨어져 버릴 위험도 있었을 텐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일 것이다.

  물론 저자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고 또 나름 옛날 세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처럼 나이가 먹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응형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니시  (0) 2018.06.10
혼자일 것 행복할 것  (0) 2018.04.21
오직 두 사람  (0) 2018.04.21
피프티 피플  (0) 2018.03.31
[도서리뷰] 카드의 여왕  (0) 2017.11.02